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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친 눈길의 페이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장편소설



 책을 집어든지 꽤 되었고 덮은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도 이 책을 잘 모르겠다. 역시 강제성이 없는 독서는 힘든 것 같다. 내가 장편 소설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알아듣기란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뭐랄까 읽는 과정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다 읽고나면 내가 뭘 읽었지? 하는 느낌? 매 문장문장은 좋았지만 내가 정리를 잘 못한 느낌이다. 또 사건이나 시간이 꽤나 넓기도 하고 순행적 구성이 아니다보니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입체 누드 사진으로 시작하는데 주인공이 보내는 대학 생활이 딱 이래보인다. 환상적이고 담배 연기가 아른거리는 침대에서 매일 섹스를 하는. 물론 대학생들이 다들 이렇게 산다는 건 아니지만 낭만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학생회 활동으로 시작해서 그 먼 독일까지 갈 수 있었을까. 정말 소설같은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뒤로 이어진 유학생활? 도피생활? 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먼 세계여서 그런가. 아니면 또 내 국수주의가 도져서 배경이 외국이어서 본능적으로 눈이 거부했나 모르겠다. 


["제가 취한건 아는데요. 제가 집이 진짜 가깝거든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금방 들어가서 자면 돼요." "그래도 안돼.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그렇게 술이나 퍼마시면 쓰나." 탁자에 놓인 빈 소주병을 들고 주방 쪽으로 걸어가는 주인아줌마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하지만 어떡해요? 순대가 너무 많이 남았잖아요. 이것 봐요. 아깝잖아요. 아직 두병은 더 먹을 수 있는 순대란 말예요." "아이구, 참. 순대가 소주 마시나? 순대 남는다고 소주 먹는 인간은 이날 이때까지 학생이 처음이네. 순대에 맞춰서 소주를 마실게 아니라, 소주에 맞춰서 순대를 먹으면 됐잖아. 옷 찢어졌는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내일 학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지. 어여 남은 순대 다 먹고 들어가. 객지 생활은 자기가 하는 것 같아도 밥이 하는 거니까." "팍 엎어지면 코 닿는 데가 학굔데, 아줌마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줌마가 무슨 우리 엄마라도 돼요? 빨리 소주나 주세요." 탁자 위에 엎어지는 시늉을 하면서 내가 말했다. "저 정신머리하고는. 학교가 코앞이긴 무슨 코앞이야. 여기서 차 타고 한 시간은 가야겠구만." "지금 제 마음이 그래요. 코앞에 있는 학교 간다고 집 나온 지가 벌써 닷새째인데, 아직 강의실 구경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딱 한 병만 소주 딱 한 병만 주세요." "코앞이긴 개코가 코앞이냐고!" 그때까지도 나는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참 딴소리를 늘어놓은 뒤에야. 거기가 내 자취방이 있는 동네가 아니라 면목동이며, 그 식당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순간, 술이 다 깨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여기가 정말 면목동이 맞느냐고 아줌마에게 되묻다가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식당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다니다가 대로로 나가 표지판을 본 뒤에야 나는 거기가 정말 면목동이고, 내가 사는 학교 근처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건 내가 하루 종일 멍한 정신으로 걸어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울의 변두리가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서울이 낯선 도시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건 그 풍경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꿈속을 걸어다는 것과 같았다는 뜻이었다. 걸어다니면 걸어다닐수록 그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그들이 나처럼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건 너무나 분명했지만, 나는 그 사실이 좀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걸어다니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들을 붙잡고 "당신들, 정말 살아 있느냐?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 맞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中

 

 다들 어떻게 살아가시나 모르겠다. 이책도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제목만으로도 위안을 주니 살만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프로 소설가다.” ‘프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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