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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친 단어들의 조합

자전거 여행

 비만 오면 벽지가 카스테라처럼 눅눅해지고 눈물이 맺히는 반지하를 잡은 건 오직 하나의 이유였다. 그나마 한강이 가까우니까. 아저씨가 원래 43만원인데 이월상품이니 25만원에 줬다는 새하얀 자전거를 일주일만에 꺼냈다. 새하얗다는 사실은 구매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그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첫번째는 밤에만 탈 수 있어서 색을 식별할 수 없었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아무도 자전거 색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나조차도 그따위것을 볼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어쨌든 한강을 왼쪽에 두고 페달을 밟는다는 건 한강 주변에 사는 청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되뇌었다. 가로등만 켜져 어둑어둑한 골목을 지났다. 등줄기가 반지하방 벽지처럼 눅눅해질 때쯤 자전거 가게 사장님이 서비스로 달아준 미니 라이트에 광명 10km라고 써있는 초록색 표지판이 스쳐지나갔다. 광명을 찾아야하나, 하는 쓸데없는 말장난을 생각해내고 뿌듯해져 오늘 하루를 평생 기억하기로 다짐했다. 2단 기어를 3단 기어로 바꾸고 세 대쯤 추월했을 때, 왼편에 있어야할 한강이 없어져 있었다. 페달을 계속 밟은 채로 두리번거렸지만 국회의사당만 나와 아무 상관없이 빛나고 있었다. 등줄기는 불어터질 듯했다. 인생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