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안타깝게도 이제는 시집을 읽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너무 바빠져 버려서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시와 먼 사람이 되지 않고 싶었는데, 필연적으로 멀어질 것만 같아서 너무 아프다. 이 시인도 많이 아팠나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모두 그렇듯이. 다들 그렇다는 말은 나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하다. 안희연처럼.
목소리는 목 안에 없는데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몸을 찢고 날아오르는 일과 아름답게 파묻히는 일을 상상했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 북극여우가 서 있었다
- 뇌조 中
내가 이상하게 시를 볼 때 집착하는 구석이 있다. 마침표를 찍는지 안찍는지가 나에게는 시적 화자의 태도를 읽어내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시중에 뇌조는 북극여우를 피해 굴을 파고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게 애쓰고 피해다니고 도망다녀도, 숨을 쉬기 위해서 또는 하늘을 잠깐 보기 위해서 굴에서 나오면 북극여우같은 귀여운 탈을 쓴 포식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취업이 힘든 현실을 피해도 결국 경제라는 무적의 논리를 가진 현실을 피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적어도 나와 이 시인은 이 말조차 끝마칠 자신이 없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왜 자꾸 눈물이 차오르는지는 묻지 못한다
돌 아니라 사람
부품 아니라 사람
그런 말들은 너무 작아서
종이 인형 하나 쓰러뜨리지 못하는데
왜 자꾸 날아오르려는 것일까 믿음이라는 말
- 거짓말을 하고 있어 中
우리는 개인이기 때문에 외로우며, 나서기가 어렵다. 그래서 애써 무시하곤 한다. 나보다 작은 것들, 나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것들. 그래도 나는 이 화자에게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그녀의 눈물이 차오르며, 믿음이라는 말이 자꾸만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조그마하게 걸리는 것, 최소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한 소년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묻습니다 "아침이 왜 아침인 줄 아세요?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 꽃으로 돌아오라고요."
저 소년은 어떻게 식물학자가 됩니까 책 속에 갇힌 삶은 어떻게 흉기가 됩니까 나는 하루빨리 활자 밖으로 걸어나가야 합니다
- 파랑의 습격 中
우리는 수많은 종이들에 파묻혀 있다. 주민등록초본, 달력, 성적증명서, 인턴지원서, 통장, 이력서 등등. 하지만 그 중에서도 손으로 쓰는 편지는 받아본지가 오래되었다. 책을 읽은지 오래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세계는 무한하다. 체계라는 것은 유한하다. 마음 안의 조그마한 것, 그것때문에 시선을 잠깐이라도 돌리는 것이 이 시인이 최소한으로 지향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시발점이다. 타인의 슬픔이 끼어들 때, 명월이 천산만락에 아니 비춘 곳 없는 것처럼 높은 곳에서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