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정미경
되게 여성적인 소설이 한가득이었다. 서술자가 여성인 소설이 대부분이기도 했지만 소설집의 첫 소설인 '무화과나무 아래'의 남자의 심리도 남자인 내가 공감하기에는 약간 어려운 감도 있었다. 물론 불법 신장 이식을 받은 그의 죄의식과 전쟁터로 자신을 내보는 삶은 인상적이고 볼 만 했다. 소설집에서 첫 소설이 끼치는 영향은 큰데, 내 생각엔 뒤에 있을 소설들과는 제일 거리가 먼 소설을 제일 앞에 배치함으로써 정미경의 한계를 포장? 안보이게 하려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무언가', '모래폭풍', '검은 숲에서' 세 작품은 그냥 비슷해보였다. 현실의 삶에서 힘들게 사는 여자가 가지고 있으나 절반도 갖고 있는게 아닌 남자들과 함께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더욱 절망감을 느끼는 스토리. 그녀의 목소리를 산다는 숫자에 미친 섹스 머신 남자, 임신시켜놓고 책임지지 않는 남자, 뇌종양에 걸렸다며 사라진지 3년만에 보고싶다고 전화하는 남자. 이런 남자들을 등장시켜 그녀가 말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남자여서 그런지 딱히 공감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것보다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달걀 삼키는 남자'의 남녀관계는 위에서 말한 관계의 대척점에 서있다. 쉽게 말하자면 여성이 가해자이고 남성이 피해자처럼 느껴지는 관계인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없애버렸음에도 어떻게 자신을 사랑해 주길 바라는지 이해가 안된다.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고 정말 못된 '년'이라는 생각 밖에 안든다. 이기적인 년. 계속 위의 세 소설의 주인공과 정아가 겹쳐보인다. 그래서 더 괘씸. '소년을 울지 않는다'는 그닥.... 잘 쓴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좋은 소재였을텐데 아쉽다. 역시 자기가 잘하는 걸 해야한다는 느낌.
[엄마, 사는 게 왜 이리 지루해? 조잡한 픽션이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으니. 나 누구에게도, 한번도 붉은 꽃이었던 적 없으니. 여태 살았는데 아직도 서른이라니.]-무언가中
해설에서는 '배수아보다 고전적이고 전경린보다 차분하고 공지영보다 다양하고 신경숙보다 세련되고 은희경보다는 절실하다는' 평을 내렸지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그저 그런 느낌. 여자가 읽는다면 괜찮은 소설이겠지 생각해본다. '무언가', '달걀 삼키는 남자'가 그나마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