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친 눈길의 페이지

은는이가 - 정끝별 시집

239★ 2015. 2. 23. 12:26



  시집의 제목도 너무 예쁘고 시인의 이름도 너무 예뻐서 집어든 시집이다. 한참 문법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법과 문학을 동시에 잡겠다는 마음?으로 샀던 것 같다.  시인이 이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데 아마 나같은 학생을 타겟으로 이런 제목을 짓지 않았을까?

 

 나는 시집 안의 시를 읽지만 정갈하고 너무 예쁜 표지에 대해서 말을 안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어울린다. 정끝별이라는 이름과 은는이가라는 시집 제목과 직사각형의 형태와 초록색 빛깔까지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표지이지만 너무나도 눈이가고 예쁘다. 문학동네의 시집은 이런 느낌때문에 모으나보다.


 하여튼 시 얘기를 해보면 읽는 동안 꽤 많은 페이지를 접었다고 생각했다. 읽는 데도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고 술술 읽히기도 해서 정말 좋은 시집이고 잘 샀다고 생각했다. 내심 너무 많은 페이지를 접은 것이 아닌가 걱정도 했는데 세어보니 아홉번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시집 자체의 밸런스가 참 좋은 것 같았다. 자신이 바라는 인간상을 그리기도, 아니 그린다는 것보다는 그리워한다는 것이 더 맞을 수 도 있겠다. 또 한 사회 좁게는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애정 또 궁극의 타이밍들을 잘 잡아낸 시들이 가득했다.


묵묵부답


죽을 때 죽는다는 걸 알 수 있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야?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죽는 거야?

죽어서도 엄마는 내 엄마야?

계절을 가늠하는 나무의 말로

여섯 살 딸애가 묻다가 울었다


입맞춤이 싫증나도 사랑은 사랑일까

반성하지 않는 죄도 죄일까

깨지않아도 아침은 아침일까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

마흔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더이상 빚도 없고 이자도 없다

죽어서야 기억되는 법이다

이젠 너희들이 나를 사는 거다

어둠을 가늠하는 흙의 말로

여든다섯에 아버지는 그리 묻히셨다


제 짐 지고 제 집에 들앉은

말간 물집들


 아버지로부터 딸까지 등장하는 이 시를 보면서 이 시인은 전달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통해서 미래로 전달하는, 하지만 그 일은 녹록치가 않다. 말간 물집들을 갖는다는 일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나도 과거에 베이스 기타를 칠때엔 그득했던 물집들이었지만 기타를 놓자마자 그 물집들은 사라져버렸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 물집이 아닐까.


 언제나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고 까닭이 있고 연유가 있다. 그러한 과거의 것들에서 앞으로의 것들을 만들어내는 자가 좋다. 금보다는 그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좋다. 지금 이 순간을 말하는 자가 좋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의 그 궁극의 타이밍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만 마냥 바라보지 않는 그는 더 대단하다. 정말 교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보다. 새삼 캠퍼스의 교수님들이 대단해보인다. 물론 이 시집을 다 읽은 이 시점에서는 시인이 제일 대단해보인다.


 기나긴 그믐, 저글링 하는 사람, 동태 눈알, 검은 풍선, 각을 세우다, 한밤의 칸타타를 좋게 읽었다.


은는이가

저자
정끝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0-2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그러니까 이건 너무 새로운 사랑 이야기시인을 업으로 삼은 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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