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친 눈길의 페이지

이별전후사의 재인식-김도연

239★ 2014. 6. 27. 12:08

 중고서점에서 헐값에 산 책이지만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살 때는 깨끗한 상태였는데 여러번 읽다보니 표지에 손때가 타긴 했지만 뭔가 제부도에서 진짜는 아니더라도 빛나는 모조 진주를 찾은 느낌이다.

 여덟작품 중에서 마음에 안 든 작품은 없었다. '바람자루 속에서'나 '사람 살려!' 같은 허구적? 환상? 이 도가 넘을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현실성이 있는 환상이었다. 특히 '바람자루 속에서' 같은 경우에는 말이 많은 내비게이션이나 와이프와 외도의 상대인 Y, 그리고 K교수까지 이렇게 많은 장치를 해놓았는데도 고라니와 멧돼지의 등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느낌은 아니고, 대학 강사의 삶, 더 나가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중년 남자들의 상태를 잘 보여준 것 같다. 그렇다고 중년 남자가 다 바람을 피운다는 건 아니고ㅋ...

 '메밀꽃 질 무렵'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리메이크 판이라 볼 수 있겠는데, 허생원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의 아들로 짐작되었던 동이의 이야기이다. 이효석의 작품과는 정서가 멀기는 했지만 이효석이 시적으로 소설을 썼다면 김도연은 소설적으로 소설을 쓴 느낌? 아무래도 작가가 강원도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 소설 뿐만이 아니라 강원도가 배경인 소설이 많았다. 뭔가 작가에 더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었다.

 그래도 제일 볼 만한 이야기는 '떡'과 표제작인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이었으리라. '떡'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며칠 전 본 김재영의 소설의 비극판인 느낌이었다. 몸을 판다는 소재만 아니라면, 아니 그게 괜찮다면 교과서에 넣어도 될 것 같은 좋은 소설이었다. '이별전후사의 재인식'은 대선이 있었던 1997년과 2007년의 남녀 이야긴데, 정치소재를 끌어들였지만 전혀 거북한 게 없었고 연인관계의 비유에 맞았던 것 같다. 박지성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다.

[대체 얼마 만에 세 사람이 함께 걸어보는 걸까 생각하니 아득하다. 고개를 넘어온 바람이 시린 달빛과 섞여 메밀꽃을 흔든다. 그때마다 눈가루 나리듯 꽃잎이 떨어진다.  방울 소리가 요령처럼 딸랑거린다. 나귀의 고삐를 잡은 동이가 허생원에게 묻는다. "아버지, 인생이 뭔가요?" "뭐긴, 장보러 왔다가 장보고 가는거지."] -메밀꽃 질 무렵 中

 '북대'는 뭔가 윤대녕을 읽는 느낌이었고, '바람자루 속에서'는 온건한?ㅋㅋ 박민규를 읽는 느낌이었다. 좋은책. 훌륭한 소설집.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저자
김도연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2-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비애를 감싸안는 특유의 정서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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