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이제 보니까 표지가 야하다. 모든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되어 구하는 데에만 신경을 써서 표지를 보지 않았었는데 이제보니까 애들 데리고 나온 부부는 절대 못사갈 것 같은 책이다. 물론 내용도 애들한테 읽어줄 수 없다. 애들이 읽고 행여나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지면 살 수 없을테니
시 좀 깨나 읽는 사람이라면, 아니 학창시절에 문학 교과서를 한 번 들여다 봤다면 김수영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수영의 그 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김사과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 미친년 하나가 등장할 뿐이다.
이름도 안 나오는 이 미친년은 운이 좋아 소설로 등단한 듯 하다. 그리고 시덥잖은 글을 쓰면서 안되니까 시를 쓴단다. 맨날 술이나 먹는 주제에 남친한테 일도 가지 말란다. 대단하다. 김사과 소설이라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의 주인공 가운데 이렇게 디테일이 쩌는 주인공은 처음 봤다.이 깡은 어디서 난걸까.
하지만 돈은 어디에서든지 구할 수 있는 거잖아. 돈은 내 동생한테도 많아. 엄마 아빠한테도 있어. 네 작은아버지한테도 많겠지. 하지만 사랑은 여기밖에 없어(난 내 가슴을 가리켰다.) 돈은 똑같지. 누구한테나 완전히. 하지만 사랑은 유일해. 우리는 돈보다 더 굉장한 걸 가지고 있어. 돈은 아무한테서나 뜯어내면 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돈이라는 건 사실 은행에서 아무렇게나 찍어내는 종이쪼가리일 뿐이잖아? 왜 그딴 것을 얻으려고 힘들게 일하고 시간을 빼앗겨야 해? 어차피 돈이란 건 있는 사람에겐 영원히 있고 없는 사람에겐 영원히 없는 거야. 그러니까 있는 사람들한테 뜯어내면 되는 거야. 어차피 너무 많아서 다 쓰고 죽지도 못할텐데.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돈을 피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을 피한다. 그것도 지가하는 것도 아닌데. 웃기는 인간이다. 왜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런 미친년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왜 미친년은 죽어야만 하는가. 미친년도 살 권리가 있다. 하루 죽어라 일하면 맥주 몇 캔밖에 사오지 못하는데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혹시 비정상인건 이 주인공을 뺀 나머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잠식해온다. 예술을 꿈꾸며 살 자유. 어차피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쇠고랑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더이상 나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자 공포가 사라졌다. 더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난 자유였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왕복 팔차선 거리를 가로지를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난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수도. 나는 멈춰 섰다. 모든 것이 자유다. 그러니까 자동차에겐 나를 치는 자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내게 차에 치어 죽을 자유가 있듯이 말이다.
주인공이 말했듯이 그녀가 원하는 자유는 결국 죽을 자유다. 사회에 도태되어 죽을 자유. 돈을 벌지 않는 자유는 죽는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별로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 필수로 들으라는 금융 수업을 들을 때가 제일 괴롭다. 대학에나 와가지고 너무 속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금융 수업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억지로 들으라고 하는게 문제다. 그래서 그 수업땐 맨날 잔다. 그 잠의 자유가 죽음의 자유로 이어질까, 도태의 자유로 이어질까 두렵기는 하다.